체르노빌 사람들의 목소리, 그 현장성을 담은 기록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야만 해요.”발전소에 있던 4호기가 폭발로 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초기 판단 실수부터, 원자력 노심에서 더 이상 아무 물질도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납과 모래, 온갖 물질을 쏟아부으면서 그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애쓰는 어이없는 결정들, 방사능 피폭 위험 가능성을 알지 못한 채 폭발 현장을 ‘구경’하던 프리피야트 사람들에게 진실을 숨기면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 소개시킨단 말입니까? 우리는 전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될 겁니다!” 외쳤던 사람들까지… 관련자들의 생생한 말과 행동은 고스란히 되살아나 그날의 현장을 증언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젊은 소장과 제어실 엔지니어들, 사고 후 막대한 규모의 제염 작업과 대규모 주민 소개를 지휘했던 당국자들,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까지 책 속에서 살아 숨쉰다.
한편, 안전복을 지급받지 못한 것은 물론 헝겊 방독면조차 없이 방사능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갔던 731특별부대 작업자들과 피폭될 줄 알면서도 또 다른 폭발을 막기 위해 원자로 아래 자발적으로 들어갔던 기술자들의 기록은 장엄하다. 잠든 아들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집을 나선 그들이야말로 그날 밤의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달 탐사 로봇까지 동원하고, 인간형 로봇들도 투입했으나 결국 기계들은 작동을 멈추었고 납 앞치마를 두른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발전소 안으로 들어갔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발전소에 끝까지 남아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과학자들 역시 놀라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최대 피폭 한도에 도달해 귀가 조치당하지 않으려고 현장에 갈 때 선량계를 일부러 두고 가기도 했다.
이런 이들의 목숨을 건 노력에도 발전소에 씌워진 석관은 완벽하지 못했다. 그저 미봉책일 뿐.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이 된 원자로 자체의 설계 결함, 소비에트 원자력 프로그램의 실패, 비밀주의, 과학자들의 오만 등은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체르노빌 사고 직후 방사능이 퍼져 나가고 있다는 진실을 은폐하는 데 소련 당국은 최선을 다했고, 방사능 가득한 거리에서 메이데이 퍼레이드를 강행해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탈출이 이어졌고, 막으려 해도 불안은 저절로 증식해 나갔다. 사고 후 암 발생률이 실제로 높아지자 그건 실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방사능 공포증’이 높아졌을 따름이라 주장하는 과학자까지 있었다. 진실을 덮으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숨바꼭질은 오래도록 이어졌고, 용기를 내 준 관련자들 덕분에 체르노빌의 이야기는 조금씩 수면으로 드러났다.
그 목소리에 생명을 부여한 것은 바로 저자 애덤 히긴보덤이었다.
-출판사 서평 발췌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