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출판사 서평
“휴, 여기서 어떻게 살지?”
재산이 되어 버린 집에서 홀로 보내는 어린이의 시간
건우의 부모님에게 집은 가족의 보금자리라기보다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부모님이 더 넓고 더 비싼 집을 위해 일하는 동안, 건우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 시골의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 했다. 건우의 부모님은 동네에서 가장 값비싼 새 아파트를 마련하고 나서야 건우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하지만 건우는 갑작스러운 서울살이가 어색하고 힘들다. 게다가 엄마 아빠는 둘 다 매일 야근에 출장으로 바쁘고, 어쩌다 한자리에 앉아도 건우의 얘기에는 관심이 없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빈집을 지킨다. 집에 혼자 있다 보면 집이 꼭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고, 어디선가 자박자박 발소리가 나기도 한다. 게다가 불쑥 나타난 낯선 아이는 건우네 집이 자기 집이라고 몰아붙여 건우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김해우 작가는 어린이가 홀로 집을 지킬 때의 두려움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리고 함께 있어도 마음은 제각각인 건우네 가족을 통해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넓은 집이나 비싼 자동차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함께하는 시간임을 말한다.
아무리 좋은 걸 가진들 함께할 가족과 친구가 없다면, 뭐든 나누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너무 바빠서 쉴 시간도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_‘작가의 말’ 중에서
“먼저 우리 집을 빼앗은 건 인간들이야!”
집을 빼앗긴 여우와 의지가지없는 외톨이들의 한판 승부!
여우는 전설, 민담, 신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동물이다. 옛이야기에서 여우는 사람으로 변신하여 인간들을 골탕 먹이곤 한다. 김해우 작가는 여우가 정말로 교활하고 약삭빠른 동물인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여우는 인간 때문에 터전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꾀를 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산과 숲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공항을, 골프장을 짓는 현대 사회로 배경을 옮겨 보면 어떨까? 이런 발상에서 『새빨간 구슬』이 시작되었다. 『새빨간 구슬』의 여우 자매는 인간의 손에 집과 부모님을 빼앗겼다. 이들이 살던 자리에는 고래 등같이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갈 곳이 없어진 여우 자매는 인간의 집을 빼앗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많은 집 중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건우네 집을 고른다. 자매에게는 돌아갈 자리도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집을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
여우와 맞서는 건우와 삼발이에게도 집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 건우에게 집은 불편한 곳이다. 부모님은 한집에 살아도 얼굴 보기가 힘들고 혼자 빈집을 지키는 시간은 외롭기만 하다. 그래도 십 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엄마 아빠를 위험 속에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어떻게든 여우를 막아야 한다. 삼발이는 건우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 데려온 유기견이다. 다리가 세 개밖에 없어서 이름도 삼발이가 되었다. 집 없이 거리를 떠돌던 삼발이에게 건우는 따듯한 집이 되어 준다. 삼발이는 소중한 친구 건우를 위해 여우들과 맞서 싸운다. 집이 필요한 여우 자매와 집을 지켜야 하는 건우, 삼발이의 숨 막히는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빛과 어둠이 넘실대는 강렬한 이미지
『새빨간 구슬』은 도심의 아파트 단지와 옛이야기 속 여우라는 생경한 조합이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잠든 엄마 아빠의 입에서 붉은색 구슬이 나오는 장면, 집을 차지한 여우들이 시뻘건 생고기를 놓고 축하 파티를 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만큼 으스스하다.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흑백 일러스트는 책의 분위기를 더욱 감각적으로 끌어올린다. 황미옥 일러스트레이터는 깊이 있는 시선과 세밀한 표현으로 그림책,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매체에서 고유한 세계를 펼쳐 왔다. 『새빨간 구슬』에서는 연필과 색연필로 아파트 단지, 놀이터, 집 안 같은 익숙한 풍경들을 불길하고 낯설게 쌓아 올려 건우가 느끼는 두려움을 표현했다. 풀숲에서 비죽이 튀어나온 여우 꼬리, 아파트 단지를 뒤덮은 거대한 여우의 그림자, 유일하게 빨갛게 채색된 여우 구슬 등 상징적인 그림들이 어린이 독자를 이야기 속 세계로 끌어들인다.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