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의 선구적인 인물 듀나. 2002년 출간되어 명실상부 듀나의 대표작으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태평양 횡단 특급』의 개정판이 많은 이의 기다림에 화답하며 23년 만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개정판 작업은 띄어쓰기와 맞춤법 등을 중심으로 수정이 이루어졌으며, 내용상 바뀐 부분은 없다. 다만 작가가 특별히 신경 써서 수정한 부분은 두 곳인데,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묘사의 실수가 있었던 곳과 인명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개정판이니 당시의 인종적/문화적 편견을 수정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대부분 그냥 두었다. 아무래도 거짓말이 될 테니까”라고 작가가 이번 개정판을 펴내며 밝히고 있거니와, 비단 이러한 부분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문화적 기반 위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소설 속 장면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 역시 그대로 두었다. 이 모든 것이 작품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독서의 즐거움을 전혀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눈에 못내 도드라지는 부분도 있긴 하다. 미라맥스의 몰락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그렇다. 하지만 “미래 예측을 하느라 이 장르의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당연히 내 ‘예측’은 대부분 틀렸다”는 작가의 고백과 “많은 SF 작가가 그랬듯, 나는 예술 창작을 하는 인공지능이 나오는 시기를 너무 늦게 잡았다”는 진단이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에는 SF의 세계에서 시간이 반드시 미래로만 향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듀나의 소설에는 자연스럽게 덧붙는 수사들이 있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고전문학과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 음악이나 영화 등 대중문화와의 접점, 사회 비판적 성격과 젠더 의식, 판타지와 미스터리, 호러와 로맨스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적 접근, 인간-기계-포스트휴먼 담론 등이 그것이다. 『태평양 횡단 특급』은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듀나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며, 인간중심주의적 속박에서 벗어나 암울하지 않고 비극적이지도 않은 인간의 몰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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