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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소설집)
요즘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인 성해나의 단편소설집으로 제일 처음 나오는 단편인 길팈클럽은 2025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이미 읽었던 터라 익숙했지만 나머지 단편들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성해나 작가의 글에는 독특한 힘이 있다. 단편 하나를 다 읽고 나면 꼭 이야기 속 어딘가의 골목에 혼자 멍하니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각도에서 아주 예리하고도 날카롭게 세상을 포착해낸다는 느낌. 그래서일까 읽고 나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고 재미있기도 하면서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 감정들 속에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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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책표지가 너무 예뻐 고른 책으로 단편소설집이다. 나에게 이런 류의 책은 언제나 가장 어렵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이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지구 어딘가에 정말 이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직설적이고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써내려간다. 이건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나 또래 여자친구들에게서 봐왔던 감정과 태도들이 이 이야기들 속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이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불온하고 거침없는 이야기라고 표현했지만 어쩌면 인생이란 본디 그런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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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 세계 최고 멘토들의 인생 수업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좌우명과 경험담에 대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그들의 얘기는 흥미로웠고 일부 방향성에 대해서는 저도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 미래가 후배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고 노하우가 되도록 길을 개척해 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B.Marking. 도 하고 모방도 하면서 제 나름대의 길을 창조하면 되리라 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고. 정답을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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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생도서’로 손 꼽히는 홍학의 자리. 얼마전에 티비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도 독서가 취미라는 한 출연자가 인생도서로 꼽았다. 대부분의 도서관에 이미 대출중이라 멀리있는 도서관까지 가 겨우 빌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첫 페이지를 펼쳤다.
웬걸, 기대감을 안고 읽은 첫 문단부터 역겨웠다. 책을 읽으며 역겹다는 생각이 드는게 맞나..?싶었지만 리터럴리 역겨웠다. 마치 영화 ‘하녀’나 ‘기생충’을 봤을 때의 그런 불쾌감이었다.
나라가 선진국일수록 인간의 추악함이나 더러운면을 파헤치는 문화 컨텐츠들이 발달한다던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구태여 인간의 깊은 곳에 숨겨있는 악한 본성을 굳이 드러내는 컨텐츠들을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싶다. 디즈니부터 픽사까지 많은 곳에서 ‘인간의 밝고 선한면’을 드러내고 복돋는 컨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인간은 반만년을 걸려 열심히 ‘문명과 도덕성’을 발전시켜왔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선택하는 장면들,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열심히 자기자리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연주가들, 자기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도 남을 구하기로 선택하는 순간들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나는 좋다.
하지만 뭐, 작가의 말에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자는 목적을 최우선으로 책을 쓰셨다니 그 목적은 달성하셨다. 하루 만에 앉은자리에서 다 읽게되는 책이었다! 읽고나서의 기분은 더러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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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장편소설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필력이 정말 어마무시하다. 문장 어디 하나 흐름이 끊기는 곳이 없고 사투리로 쓰인 부분은 읽을 때마다 정겹고 재밌다. 나는 서울 토박이라 그런지 사투리가 늘 신기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내가 죽어도 모를 감정들이 사투리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은 빨치산 아버지를 둔 딸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회주의자, 빨갱이 같은 단어는 나에게 늘 거부감부터 들게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것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결국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작은아버지의 이야기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홉살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했던 일들, 그리고 평생을 원망하며 살아온 형을 결국 유골이 되어 돌아온 후에야 부둥켜 안는 그 심정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소설 속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도 자발적 호구였다. 가족의 불편함보다 남의 불편함을 더 못 견뎌하고 가진것도 별로 없으면서 콩알 한쪽이라도 남들에게 나눠주고 싶어하던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마음에 다가가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인간혐오에 걸린 내 마음에 깊은 파장을 일으킨 건 아버지가 아리에게 했던 말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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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 B.A. 패리스 장편소설
너무나도 다정하고 완벽해 보였던 남편의 진실, 사이코패스의 결혼생활.
“밀리 방이 무슨 색이라고 했지?”, “빨간색.. 빨간색이야”, “그럴줄알았어”
이 세줄로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끼치고 너무 무서워서 엄마한테 달려갔다.하하.
사람이 완벽한 고립속에 얼마나 무력한지. 작가는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주인공 그레이스에게 몰입하게 한다. 후반부에는 행여나 사이코패스 남편 잭이 그레이스를 따라 태국으로 올까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한여름에 가볍게 후루룩 읽기 좋은 스릴러소설이었다! 머릿털까지 오싹하니 오늘은 시원하게 자겠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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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소설집
9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책이다. 아, 잊고 있었다. 한국문학의 이 날것의 맛을. 보기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그 날것의 맛. 어렸을 땐 이런 거친 감정과 상황들이 불편해서 한국문학을 피했다. 최근에는 젊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꽤 읽었는데 그 작품들에서는 이런 순도 높은 날것의 맛은 찾기 어려웠다. 아마 그래서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희열이 느껴졌다. 마치 예전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 다 읽고 나서 "이 아저씨 재밌는 사람이네"하고 혼잣말을 했다. 삐삐 시절의 삶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그 시대가 전혀 촌스럽거나 뒤처진 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라서 더 짙게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 기다림, 불안, 우연등 그런 감정들이 이 소설에서는 너무도 생생하게 또 자연스럽게 풀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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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대체 무슨 내용을 담았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걸까!
도저히 안읽힌다 안읽혀… 각종 과학용어와 미생물이름들… 우주이야기…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며 읽기 포기하기를 여러번. 결국 네이버에 검색하던 중 발견한 ‘중간까지만 참고 읽으면 그 후로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란 독서평을 보고 중간까지만 읽자! 싶었다. 그러다 밥 먹을 때도, 심지어 외식할때도 책을 놓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지.
외계생물체와 인간의 행성을 넘어선 우정이야기! 지구와 에러딘을 구하려 애쓰는 두 존재의 치혈한 우주에서의 사투!
‘잠깐, 이 책 아직도 안 읽었다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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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독일 나치시절 이야기라면 또 얼마나 잔인할까? 싶어 읽기를 망설였었다.
단편소설 ‘동급생’은 3시간만에 후루룩 읽히지만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고 나서의 여운은 3일을 간다 하겠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한스처럼 콘라딘을 동경했다. 함께 모든 분야에대한 대화를 나누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던, 그토록 동경하며 사랑하는 존재에게 나와 나의가족의 정체성을 향한 은은한 혐오를 느꼈을 때 한스의 자존이 얼마나 부서졌을까. 사랑하고 동경했던만큼 한스의 후반부 삶 내내 얼마나 콘라딘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을까? 하지만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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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소설
아직 날씨가 선선할 때 뒷동산 공원에 앉아 첫 페이지를 펼쳤다.
초반엔 난해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어느덧 눈물이 차오르고 소름이 돋았다
‘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왜 고통도 슬픔도 외로움도 비통함도 없는 이 세계를 떠나 그 끔찍하고도 쓸쓸한 지구를 선택할까?’ 릴리가 만든 완벽한 세상. 장애인과 차별받는 이들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 순례자들은 그 순수한 완벽의 세계를 떠나 지구로 향한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반절의 인구만이 돌아온다. 왜? 왜 그들은 지구에 남기로 ‘선택’하였을까?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고통과 혼란이 가득한 지구에서 순례자들은 사랑하는 이가 맞서는 세상을 마주한다. 결국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챈다.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되고, 나혼자 편한 낙원에 살기보다 그들과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다.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그 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나는 승무원으로서 전세계를 비행하며 살았다. 온갖 아름다운 풍경 낭만적인 도시들 맛있는 음식들 다채로운 사람들, 그 사이에서 언제나 공허함을 느꼈다.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었다. 그 사람의 곁이 아니라면 어디든 나에게 낙원은 없었다. 그가 겪는 ‘노애’를 함께 짊어지는 순간이 조금 더 괴롭지만 조금 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비록 지금 그 사람과는 헤어졌지만, 나는 또다른 사람을 사랑하겠지 그리고 나는 또다시 괴롭지만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살고 슬프지만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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