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판에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판’은 그리스 신화 속 자연의 신이다. 목동과 가축의 신으로 불리는 판은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반신은 양과 염소를 떠올리게 하는 반인반수이다. 사람과 짐승의 특징을 함께 가진 판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변덕스럽고 화를 잘 내는 성격까지 종잡을 수 없는 자연을 닮아 있다.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 자연에서 들리는 모든 것은 판의 노래다. 판은 자연 속에서 노래와 함께 살아간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춤추기도 하고, 사람들이 웃는 소리를 즐겁게 듣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던 판. 그러나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게 되면서 그들은 점점 자연의 소리를 잊어버린다. 더 이상 자연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어지자, 자연의 신인 판은 피리의 선율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마침내 세상의 혼돈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워렌이 처음 판을 봤을 때도, 판은 피리를 불려고 노력하나 피리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기억해 주는 이가 없어져 신으로서의 힘이 사라진 ‘판’의 모습은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함께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자연 역시도 혼자만의 힘으로 지켜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을 찾는 이가 없어진 순간부터 판은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사는 신이 아닌 신화 속 괴물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판이 다시 자연의 노래를 기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처: 알라딘 책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