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역사 :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
감정의 역사 :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
  • 저자 : 김학이 지음
  • 출판사 : 푸른역사
  • 발행일 : 2023년
  • 청구기호 : 925-김92ㄱ
  • ISBN : 9791156122456
  • 자료실명 : [월롱]종합자료실

책소개

출판사 서평


공포…분노…기쁨…차분함…따스함…진정성
근대 이후 독일사를 꿰뚫는 내밀한 시선

감정, 시대가 낳되 시대를 움직이다

훗날 21세기 초반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읽어낼까. 정치적 이견으로 핏줄 간에도 반목하는 지금의 사회를 두고 모르긴 몰라도 ‘분노사회’ 혹은 ‘혐오사회’로 규정하지 않을까. 이처럼 역사의 추동 요인으로 감정의 중요성은 날로 커진다.
하지만 감정사는 서양 학계에서도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 연구되기 시작한 신생 분야다. 나치즘 연구에 몰두해왔던 지은이는 이 낯선 분야에 뛰어들어 16세기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독일사의 숨은 동인動因을 성찰했다.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값지지만 연구 불모지라 할 독일 감정사 연구를 위해 시대별로 중요한 사료를 골라 분석한 내공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감정은 곧 도덕감정이어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종교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도덕공동체 수립의 핵심기제로 작동하다가, 19세기에 들어와서 경제의 영역으로 이동하되 그 도덕성은 여전히 함축하여, 그 후 감정이 곧 생산요소인 동시에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는 통찰은 정말 탁월하고 신선하다.
지은이는 1970년대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참신한 해석을 제시한다. 심리치료가 의료보험에 포함됨에 따라 심리 상담 및 치료가 일반인으로 확대되고 우울증 약 등이 처방되면서 감정이 제약회사의 화학실험실과 대학의 화학공학에 의해 조절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따스함은 기업의 영역으로 이동하여 생산요소이자 자본주의의 버팀목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지은이는 감정이 덮어놓고 긍정하거나 부정할 것이 아니라 지배와 저항의 차원에서 성찰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다채롭고 풍성한 사료를 읽는 재미
무엇보다 이 책에서 빛나는 대목은 바탕이 된 사료의 다양함이다. 16세기 독일을 휩쓴 공포를, 공포를 달고 산 마르틴 루터의 《소교리문답》, 서양 의학의 비조鼻祖로 꼽히는 파라켈수스의 저술로 풀어간다든지 17세기 무감동과 분노를 설명하기 위해 농촌 수공업자와 궁정인의 연대기 그리고 《스웨덴 백작부인 G의 삶》 같은 감성주의 소설 3편을 텍스트로 감정혁명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세계적 기업 지멘스의 창업자 베르너 지멘스의 회고록을 통해 중세 기독교에서 징벌이었던 노동이 19세기에 ‘기쁨’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 주거나 나치 시대 독일인들의 ‘차분한 열광’을 입증하기 위해 하인리히 슈푀를의 코믹소설 《가스검침관》을 분석하는 데 이르면 지은이의 학문적 면밀함과 깊이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러기에 1911년 독일에서 노동자의 ‘영혼’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배치되어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산업현장에 출동했다든가, 나치가 1933년 4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70여 개의 도시에서 문자 그대로 분서焚書 행사를 93번 연출했다는 등 흥미로운 사실을 만날 수 있다.

역사를 읽는 신선하고도 독특한 시선
사료의 나열만으로는 사료집에 그친다. 온전한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이 책은 곳곳에서 빛난다. 공포는 지배와 동원을 도와주지만 동시에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생산성을 낮춘다는 데 착안해 ‘독일 기술노동교육연구소(딘타)’와 그 후신인 ‘노동전선’과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아른홀트의 활동을 통해 나치가 어떻게 새로운 노동담론을 제시했는지 분석하고는 산업합리화에 의해 개별화된 노동자들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1938년이면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 어디든 나치 기구의 하나에는 속했고, 노동전선 주도하에 각종 여가활동 및 문화행사 참여에 ‘배려’를 했음에도 독일인들이 히틀러에 대한 열광 뒤에 차분함을 감추고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독일 학계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는 신선한 시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중반 독일에서 매년 100여 회의 마녀재판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이는 전쟁 중 전전긍긍했던 삶의 기억을 누르고 모르는 척 평범하게 인사하지만 인사를 건넨 그 사람이 ‘악한 힘’일 수도 있는” 첨예한 감정적 긴장이 폭발한 것이라는 해석도 마찬가지.

역사학은 성찰의 학문이라고 규정하는 지은이는 감정의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오늘의 우리 감정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준다고, 자신의 감정에 시대의 흐름과 개인 차원의 저항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성찰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알라딘 제공>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