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출판사 서평
피난처로서의 글쓰기
뒤라스의 어머니 마리 도나디외는 종잡을 수 없는 어머니였다. 그는 인도차이나 식민지의 거친 현실과 부딪치며 좌절했고, 그런 어머니의 불행과 절망은 딸의 어린 시절에 고스란히 배어들었다. 자신의 불행에 짓눌린 이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온전히 주지 못하고 오히려 딸에게 채울 수 없는 결핍을 남겼다. 맏아들 피에르를 노골적으로 편애하면서 아들이 여동생에게 함부로 굴고 때로 폭력을 행사해도 용인했지만, 그러면서도 어린 마르그리트를 자기 옆에, 자기 침대에 붙잡아두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보부아르의 어머니 프랑수아즈는 권위적인 어머니였다. 자신의 가치관과 규율을 자식들에게 강요했다. 사랑에서 나온 통제는 옳다고 믿었다. 억눌린 갈망을 딸에게서 보상받으려는 태도는 딸을 소유하려는 욕구로 이어졌다. 투명성 숭배자인 그는 두 딸이 주고받는 말을 엿듣느라 방문을 활짝 열어놓게 할 정도였다. 딸들이 열일곱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했고, 두 딸이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편지도 질투의 눈으로 검열했다.
자식은 물론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 했던 융합형 어머니 시도는 딸 콜레트가 『여명』에서 묘사했듯이 “인색하고 좁은, 남부끄러운 작은 마을에 살면서도 거리를 떠도는 고양이들, 선로공들, 임신한 하녀들에게 문을 열어주던 여인” “가난한 이를 도와줄 돈이 없어 절망한 나머지 이 집 저 집 부자들의 대문을 두드리며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고 외친 여인”이었다. 시도는 자연의 작은 사물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각에 충실할 것을 가르침으로써 딸에게 글쓰기의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지만, 한편으로 다 큰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자 딸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써 보내고 답장을 재촉하기도 했다.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세 사람 모두 이런 ‘빅 마더’로부터 파괴당하지 않고 자아를 지키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아주 어릴 적부터 피난처를 찾으려 했다. 때에 따라 아버지의 서재, 오두막, 숲속, 연인의 자동차 안 등이 그 피난처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의 장소를 대신해 글쓰기, 뒤라스가 말한 “현실과 나란히 놓인 오솔길”이 그들의 피난처가 된다. 사춘기 뒤라스에게 글쓰기는 어머니로 인해 빚어지는 불안감에서 달아날 유일한 피난처였다. 보부아르에게도 글쓰기는 어머니의 구속을 벗어나 자신을 지켜낼 방법이었다. 시도 역시 글쓰기의 힘을 보존하기 위해 어머니와의 밀착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렇게 보면 딸들의 글쓰기는 어머니를 떠나면서 시작된다. 세 딸은 어머니와 멀어지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혹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자신을 떼어냈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위해 떠나겠다는, 떠나서 고독에 자리 잡겠다는 의지였다. 뒤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유일하게 어머니보다 힘이 센 것이었어요.”
글쓰기로 다시 어머니와 화해하기
글쓰기는 딸에게 어머니와 화해할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어머니를 떠나 자신의 삶을 살기로 선택한 딸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혼자임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아무도 없는 저편에 혼자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보부아르가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발견한 어머니는 병든 육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어머니 시도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딸 콜레트에게 그 어머니는 이제 절대적으로 외로운 사람이다. 딸이 어머니에게서 발견하는 고독이야말로 딸과 어머니의 진정한 공통점이다. 딸은 어머니를 떠나며 혼자가 되고, 어머니는 딸과 떨어져 혼자가 된다. 딸은 고독 속에서 어머니의 고독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어머니를 이해한다. 어머니와 딸이 이어질 가능성이 여기서 열린다. 이는 작가가 혼자임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글쓰기를 통한 화해, 글 쓰는 딸이 언어로 여는 화해이다.
[예스24 제공]